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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9/주일예배 /왕을 영접하셨습니까?/눅19:28~40/이형백목사 | 최혜지 | 2026-04-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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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주일예배 /왕을 영접하셨습니까?/눅19:28~40/이형백목사 오늘 말씀은 주님을 위해 쓰면 모든 것이 풀린다는 인생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주님의 통치에 복종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가지로 환영했던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원 근처 뱃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나귀 새끼를 풀어 오라. 누가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주로 드러내신 장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왕이신 메시아이심을 나타낸 것으로, 스가랴 9장 9절처럼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것입니다. 또한 “주가 쓰시겠다”는 말은 모든 것의 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열 므나 비유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종이며,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종은 주인의 것을 맡아 일하고, 이익을 남겨도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요구하시면 내어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나귀 새끼를 풀어 갈 때 “주께서 쓰시겠다” 하자 주인들이 순순히 내어 준 것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 영원한 왕으로 오신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왕이신 예수님의 요구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 참된 백성된 자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할 때 “주님이 원하시면 주님의 뜻대로 다 드리겠습니다”라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겉옷을 나귀 위에 걸치고 길에 펴며 예수님께 최고의 예우를 드렸습니다. 이는 왕께 복종하겠다는 의미로,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나의 전권을 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영원한 왕으로 오셨지만, 세상이 기대하던 모습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하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에 힘쓰고, 맡겨 주신 사명에 충성해야 함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도에 힘쓰는 삶을 본보여 주셨고, 그 사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놓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무리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고 기뻐하며 큰 소리로 찬양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요,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예수님께서도 저들의 외침이 정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정치적, 군사적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고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할 왕으로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왕이시고 우리의 소유주이십니다.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 주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거부하고, 왕이 아니라 종처럼 여기는 것은 모욕적인 행동입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맞아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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